구석기 시대의 유물과 유적 및 생활

2015. 12. 5. 22:39한국사/한국사정리

 

 

구석기 시대의 시기 구분

 

한국과 그 주변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을 대략 70만 년 전부터이다. 구석기 시대는 석기를 다듬는 방법에 따라 전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진다.

 

전기는 큰 석기 하나로 여러 용도로 사용하였다.

중기는 큰 몸돌에서 떼어 낸 돌 조각(격지)들로 잔손질을 하여 석기를 제작했다. 제작한 석기는 각각의 쓰임새를 가지게 되었다.

후기에는 쐐기를 대고 형태가 유사한 다수의 돌날격지 등을 제작했다.

 

 

 

구석기 시대 주요 유적지

 

연천 전곡리에서는 고유한 주먹도끼가 발견되었다.

평남 상원 검은모루 동굴에서는 50만 년 전 유적지가 있다.

평양 만달리에서는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 인골이 발견되었다.

단양 수양개에 석회암 지대가 존재한다.

충북 청원 두루봉 동굴에서 흥수아이의 뼈가 발견되었다.

충남 공주 석장리에 전기부터 후기 구석기까지의 11개 문화층이 존재한다.

 

 

구석기 시대의 생활

 

주로 동물의 뼈로 만든 도구와 뗀석기를 이용해 사냥과 채집을 하였다.

점차 제작기술이 발달하여 찍개를 사용하다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뗀석기를 사용하였다. 구체적으로 주먹도끼, 찍개, 팔매돌, 찌르개 등을 사냥도구로 사용하였고, 밀개, 긁개 등을 조리도구로 사용하였다.

 

 

사람들은 동굴이나 바위 그늘에서 살거나, 강가에 막집을 짓고 생활했다. 그 집터의 규모는 3명정도의 작은 규모와 10명 정도의 큰 규모 모두 발견되었다.

구석기 시대에는 지혜롭고 경험이 많은 사람이 무리의 지도자가 되었으나 권력을 가지지는 않고 모든 구성원이 평등한 공동체 생활을 하였다. 또한 무리를 이루어 사냥하는 이동 생활을 하였다.

 

 

중석기의 생활

 

중석기에는 빙하기가 지나고 기후가 따듯해져 활을 이용해 새, 토끼 등 움직임이 빠른 동물을 사냥하였다. 또한 식물 채취와 고기잡이를 하였다.

 

구석기 후기(중석기)로 가면서 더욱 제작 기술이 발달해 잔석기를 이용하였다. 잔석기의 대표적인 예시는 경기 광주 실촌면 삼리 곤지암에서 발견된 슴베찌르개가 있다. 슴베란 손잡이를 의미한다. 이에 더하여 활, 창, 작살, 톱 등의 이음도구를 사용하였다. 이음 도구란 여러 석기를 나무 또는 뼈에 꽂아 사용하는 도구를 의미한다.

 

 

중석기 시대의 유물

 

한국의 통영 상노대도 조개더미의 최하층, 거창 임불리, 홍천 하화계리 유적 등,

북한의 웅기 굴포리, 평양 만달리 유적 등이 존재한다.

 

 

기타 내용

 

경기도 연천 전곡리에서 출토된 주먹도끼는 아슐리안 석기에 해당한다. 아슐리안 석기란 양쪽면을 가공해 날카로운 날을 세운 석기를 의미한다.

<참고 : 신석기시대 : 유물, 생활, 사회, 신앙>

<참고 : 청동기 및 철기 시대의 변화, 유적, 유물>

<참고 : 청동기 및 철기 시대의 생활, 계급, 예술>

<참고 : 고조선의 건국, 위만의 집권, 한 군현의 설치>

<참고 : 한국사정리 목록 - http://eurasia.tistory.com/category/한국사/한국사정리>